(리질리언스)리질리언스 등장과 개념의 확장

2021-07-21

리질리언스 등장과 개념의 확장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When The Levees broke)

영화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When The Levees broke)’는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도시 뉴올리언스의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의 인터뷰로 시작하는데, 그들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였을 때 해안 제방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재앙은 카트리나 상륙 3일 후 새벽에 일어났다. 뉴올리언스를 보호하고 있던 폰차트레인 호의 제방이 끝내 붕괴되어 멕시코만의 검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해수면 보다 지대가 낮은 뉴올리언스 지역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으며, 2만명 이상 실종 혹은 사망하였고 8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영화 속 화려했던 재즈의 도시는 종말을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취약한 지역이었던 뉴올리언스는 거대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치한을 위해 ‘사살권’을 발효할 만큼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하였다. 약탈과 방화, 주민간의 총격전, 성폭행 사건, 구조대와 이재민의 마찰, 시체의 썩은 물과 토양 속에 있던 오염물질이 뒤섞인 식수… 그들은 강력한 인공 구조물로 폭풍을 막으려고만 하였지, 폭풍이 도시를 붕괴시킨 이후의 사회와 환경은 어떻게 재건하고, 이전으로 회복(리질리언스)하려는 계획은 전무했던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완벽한 재난 대응법은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 오히려 재난을 받아들임으로써, 피해를 줄이고 그 피해를 입은 지역을 회복하려는 대응법이 더욱 중요하였던 것이다. 이에 미국 사회는 회복력, 즉 리질리언스(Resilience)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최대규모의 미국 자선단체인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손을 잡고 1조원 규모의 ‘국가재해 리질리언스 대회(National Disaster Resilience Competition)’를 개최하였다. 이는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하여 대형재난 대응 계획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뉴욕, 뉴저지, 뉴멕시코, 시카고 등 많은 해안도시들이 이에 동참하였다. 수행된 프로젝트들은 조경계획 및 도시계획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 ASLA)는 2014년 학술대회 주요 테마로 ‘리질리언스’를 선정하여 계획,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리질리언스라는 실천적 개념을 미국 조경계에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조경산업 정책의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그들은 도시 조경에 집중되어 있던 미국 조경계를 방재, 해안복원, 기후변화, 사회생태시스템 등 거시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에도 관심을 넓히도록 유도하였으며, ‘리질리언스’ 개념은 지속가능한 사회 구현의 전략적 수단이자 [CJ1] [김2] 예측불가능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어젠다(Agenda)로 급성장하였다.

 

리질리언스의 등장

근래 가장 큰 이슈로 자리매김한 ‘리질리언스(Resilience)’의 등장은 1970년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태학자인 홀링(C.S.Holling)은 1973년 발표한 논문인 ‘생태계의 리질리언스와 평형(Resilience and Stability of Ecological Systems)’에서 최초로 ‘리질리언스’를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하였다. 그는 ‘리질리언스’를 변화나 교란을 흡수하는 생태계의 수용력으로 정의 내렸는데, 이 개념은 생태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 사이에서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되어 발전되었다.

첫 번째 관점은 효율성, 일관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에 입각한 ‘공학적 리질리언스(Engineering Resilience)’로, 이 관점을 지닌 생태학자들은 마치 생태계를 용수철과 같은 단순한 시스템으로 생각하였다. 이들은 외부 교란에 의해 파괴된 생태계가 몇 년 만에 회복되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공학적 리질리언스’를 평가하기 위해서 ‘회복되는 시간(Return time)’과 ‘효율성(Efficiency)’이 가장 중요한 척도로 활용되었다.

반면, 또 다른 관점인 ‘생태적 리질리언스(Ecological Resilience)’는 지속성, 변화, 그리고 예측불가능성과 관련된 개념으로, 교란이 오더라도 생태계의 자기 재조직화에 의해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된다. 즉, 공학적 리질리언스에서 말하는 원래의 균형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생태계 구성 요소의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균형상태에 적응하여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주로 생태계 기능의 지속성에 주목하였으며, 생태계 기능의 유지를 위해서 감당할 수 있는 교란의 정도를 생태적 리질리언스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생태적 리질리언스’는 진화론적 시각을 기반으로 복잡계(Complex system) 개념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으므로, 실제 생태계를 설명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며, 리질리언스 개념이 다른 분야와 융합되어 확장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리질리언스와 생태복원

공학적 리질리언스와 생태적 리질리언스의 큰 차이점은 생태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공학적 리질리언스 관점에서의 ‘생태계’는 극상(Climax)이라는 균형상태으로 가기 위해 천이(Succession)라는 정해진 과정을 거치는 시스템인 반면, 생태적 리질리언스의 ‘생태계’는 다양한 생태계의 상태변수에 의해 다양한 균형점, 즉 다양한 극상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후자의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외부 교란에 의해 생태계가 돌연 다른 균형상태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관점의 차이는 생태복원에서 여실 없이 드러난다. 공학적 리질리언스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복원은 훼손된 지역을 자연에 의한 자율적 복원을 유도하는 것이지만, 생태적 리질리언스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복원은 시기 적절한 관리가 투입되어 원하는 극상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실제로 현대 생태복원의 흐름은 생태적 리질리언스의 생태계 개념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적 식재설계가인 피엣 우돌프(Piet Oudolf)의 식재설계기법이 이를 설명하는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피엣 우돌프(Piet Oudolf)는 대상지에 적합한 다양한 극상을 설정하고 수종을 선택하여, 여러 식물 개체들로 구성된 군집을 설계한다. 그는 자갈 등을 이용하여 군집간 보이지 않은 경계를 만드는데, 이는 각 군집이 설계과정에서 미리 설정된 균형점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주기적인 유지관리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이는 군집 생태계의 구조ᆞ기능ᆞ정체성을 유지시킴으로써 침입종이나 급작스러운 환경변화에도 군집이 생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엣 우돌프의 ‘군집의 극상 설계’, ‘군집의 생애주기 고려’, ‘주기적인 유지ᆞ관리’는 생태적 리질리언스 개념을 기반으로 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질리언스의 확장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에 의해 붕괴된 미국의 사회경제시스템을 회복시키기 위해, 생태학 개념이었던 리질리언스는 사회학과 경제학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리질리언스를 연구하였던 사회학자 애드거(W. Neil Adger)는 ‘사회적 리질리언스(Social Resilience)’를 사회 재조직화 및 선택적 행동을 통한 사회망 구축 능력으로, ‘경제적 리질리언스(Economic Resilience)’는 ‘내부 혹은 외부의 경제적인 관계에 의해 유도되는 느리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다룰 수 있는 네트워크 혹은 자본력’으로 해석하였다. 이 두 개념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듈화된 개인의 경제적 자본과 그 자본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 사회적 자본, 지리적 연결, 지식의 전달, 시공간을 넘나드는 혁신, 중첩된 거버넌스 등 다양한 특성들로 대변될 수 있다.

이후 리질리언스를 다루는 사회학자들과 생태학자들은 두 분야가 융합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실제 현실세계는 사회시스템과 생태시스템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통합시스템이므로, 사회생태시스템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리질리언스의 정성적・정량적 측정이 가능해지고, 실무적인 접근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홀링(C.S. Holling)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리질리언스 얼라이언스(Resilience Alliance)’라는 단체가 설립되었으며(www.resalliance.org), 이들은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Social-Ecological Resilience)’를 ‘자기조직화를 통한 전환 능력(Transformation)과 학습을 통한 적응 능력(Adaptation)이 있어 교란 혹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으로 규정하였다.

최근 이러한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 개념이 사회적 이슈와 부합하면서 ‘재난 리질리언스(Disaster Resilience)’, ‘도시 리질리언스(Urban Resilience)’, ‘해안 리질리언스(Coastal Resilience)’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특히 ‘도시 리질리언스(Urban Resilience)’, ‘해안 리질리언스(Coastal Resilience)’는 추후 본 연재에서 더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더욱 상세한 설명과 이미지는 '환경과 조경 339호'에 실린 원고를 첨부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